그녀에게 우울증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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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기에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으며 성장한 중년여성 A씨는 깊고도 흔들리는 눈빛을 갖고 있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우울증이 심해 삶에 아무런 의욕도 없었고 필자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면서 심리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예견을 숨기지 않았다. 아이에게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상담을 받을 뿐이었다.
머릿속으로 늘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무기력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못하는 그의 특성과 책임감 때문에 떠안은 일들은 날마다 쌓여갔다. 그리고 “도저히 의미를 느낄 수 없고, 해야 하는데 너무 하기 싫은 집안일”을 미루는 자신을 한심하게 여겼다.
다행히 일상적인 생활을 해내기는 했으나, 과하게 의욕적일 때 벌인 일에 쫓기다가 무기력감에 빠지기를 반복했다. 게다가 언젠가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렸다. 그것은 소위 신체화 증상으로 불리는 심인성 증상이었고 병원진찰과 검사에서는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진통제로 매일을 겨우 버티면서 살아가는 중이었다.
신에게 의지하면서도 주어진 운명에 대해 원망하고, 이제는 고인이 되어 따질 수도 없게 된 부모를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자신보다 불행하게 살고 있는 주변인들의 아픔에 연민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도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그들을 증오하곤 했다. 자기연민과 자기 혐오가 번갈아 찾아왔다.
자식들에게는 좋은 엄마이고 싶어서 정성을 다했지만 그것은 본능적인 어미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이벤트 회사에서 파견된 직원처럼,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출발했기에 늘 과도한 면이 있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도 누구보다 열심히 해서 이뤄낸 현재의 삶을 과분하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라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흔히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여성의 경우,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단단한 외피를 쓰거나 감정을 차단하며 고통을 최소화 하려한다. 또는 A씨처럼 남성적인 힘을 동원해서 마치 영웅과 같이 삶의 고비를 극복하고 해결해 가며 자신을 사회적으로 성장시키고 의무와 책임에 충실한 생의 전반부를 보낸다. 그러다 중년을 맞이하면서 그런 식으로는 더 이상 삶이 진행되지 않음을 경험하는데 그것이 증상으로 나타난다. 신체적 심리적 증상은 그 사람의 살아가는 태도에서 ‘자기다움’의 상실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담은 자기탐색의 과정이다. 자신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는 시간이다. 다행히 그녀는 상담과정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살피는 일을 용기를 가지고 해낼 수 있었다. 자신에 대한 불만과 무기력, 타인에 대한 분노의 늪에서 나오기 시작하면서 A씨는 조금씩 여유를 가져갔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기답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것은 삶에 새로운 태도를 가져온다. 그 덕에 자신이 하찮게 여겼던 저력이 조금씩 자신의 것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아름답고 선한 씨앗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불행했던 과거도 그 씨앗을 손상시킬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현재 가족에게 좋은 엄마이자 아내이고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성심을 다해서 했다. 나는 매주 그녀를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고 그녀의 감정에 머물면서 그녀를 존경하게 되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의 의미를 알고자 정면 돌파하는 그녀의 정직함과 용기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심리치료는 마치 사랑하는 과정과 같다는 이야기를 많은 치료자들이 하는데 나 역시 그 견해에 동의한다. 내담자를 치유하는 것은 내담자 본인의 내면의 힘이지만 그 과정을 안정적으로 동반하는 동력은 결국 사랑의 힘이라고 믿고 있다. 그때의 사랑은 크리스토프 앙드레가 표현한 ‘검소한 애정이자 기분 좋은 존중의 마음’에 가까울 듯하다.
상담의 종결 즈음에, 어느새 그녀에게는 특유의 어둡고 흔들리는 눈빛 대신 편안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가 흘렀다. 그녀를 몇 년간 괴롭히던 신체화 증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이따금 통증이 올 때 그것이 현재 자신에게 알려주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자신의 신체 증상을 일종의 경고로 해석하며 고마워하기까지 했다. 증상이 생길 때야말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내면화와 숙고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여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사소한 일상의 기쁨을 알기 시작한 것은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타인의 요청을 무조건 들어주기 전에 자신의 현재 심신의 상태를 충분히 고려해서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그녀는 혼자 힘으로 크고 작은 난관을 헤쳐가며 자신만의 삶을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다. 때로 공허하고 어설프고 외롭고 불편하기도 하며 절대 완벽하지 않은 매 순간을 정직하게 경험하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 글의 내담자는 특정인이 아니라 비슷한 증상으로 힘들어하던 여러 내담자의 특성을 조합한 허구의 인물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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