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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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다. 연말이라고 별스럽게 보낼 일도 아니나 주변에서 들썩거리는 분위기에 덩달아 싱숭생숭한 한 것이 무리도 아니다. 특별한 날, 생일이나 새해, 어린이날이나 어버이 날이나 의미가 붙은 날에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걸 바라게 된다. 특별한 날의 별스러운 경험이 생활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런 기대감으로 뭔가를 평소와 다르게 해보는 것이 삶의 색채를 더하는 것일까? 이런 날에 의미부여 하지 않으면 삶이 재미없이 되는 걸까?
아무튼 연말이 되니 모임도 많고 여기 저기 오라는 데도 더러 있다. 그래서 나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내 자신을 돌아보기를 할지,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지를 놓고 고민도 하게 된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일 년에 기대를 품어보자는데 왜 사람들은 만나서 그걸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정리도 혼자하면 외로운가보다. 나 역시 대학졸업 후 거의 30년 만에 동창회에 부름을 받았다. 이럴 때 연말 사용설명서라는 게 있다면 아마도 거기에는 그렇게 쓰여 있지 않을까. ‘그냥 앞에 닥친 일을 하라, 연말이 별건가?’ 그래! 올해 나의 모토가 ‘정면 돌파’였기에 피하지 않고 출석하기로 한다. 동기들이 그 긴 세월들을 다들 어떻게 살아냈을지, 얼마나 변했을지 궁금하기도 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모임에 나가기로 결정한다.
여자 동기들은 두꺼운 옷과 화장으로도 나잇살을 덮지 못했고 남자들은 복부 비만에 머리가 없어지거나 백발로 나타나 쳐다보는 것조차 미안할 지경이었다. 서로에게 어쩜 그대로냐고 마음에도 없는 덕담을 주고받으면서도 기대보다 폭삭 늙어버린 동창의 모습에 당황하는 표정까지 어쩌지는 못하는 듯 보였다. 잘 보이고 싶은데 말이 길어지면 자신의 삶이 들통 나니 맘 속 얘기는 쏙 뺀 채 이야기는 영혼 없이 이어지다 끊어지다 한다. 아, 그냥 집에 있을 걸 후회가 밀려온다.
그래도 초반의 재는 듯한 긴장이 풀리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늙은 육신에서 나오는 말들은 시간을 거슬러 우리를 실제 나이와 무관하게 20대로 데려다 주는 듯했다. 유치한 줄 모르고 서슴없이 장난기가 발동하는 그때의 우리로. 그 시절 세상을 몰라서 무모했고 그래서 부딪치며 배워갔던 청춘들로. 그 때 알게 된 것이 세상의 전부인양 오만했던 건 부끄럽지만 그래도 열정만은 넘쳤었구나.. 묻어뒀던 옛 기억도 새록새록 올라온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유난히 젊은 얼굴을 한 수다맨이 연신 신세타령을 한다. “내가 정말 열심히 일했거든, 기러기 아빠로 몇 년을 살면서 죽어라 돈 벌어서 부쳤거든. 근데 퇴근해서 TV보며 혼자 밥 먹는데 눈물이 주르륵 나더라. 나는 그냥 돈 버는 기계였어. 그래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다 때려치우고 돌아오라고 와이프랑 애한테 그랬지.”
얘기를 듣던 우리가 고생했다고 토닥여 준 이후로도 그는 한참을 자신이 얼마나 불쌍한 신세인지 설명하려 했다. 대화를 독점하는 정도가 위험 수위를 넘어서자 옆에서 듣던 친구들이 슬슬 다른 자리로 이동한다. 그 친구의 옆이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지자 다시 신세 한탄이 시작된다. 무한반복. 이쯤 되면 슬며시 드는 생각들이 있다. ‘우리 모두 쉽지 않게 살았는데. 조용히 네 말을 들어주는 친구들의 삶이 풍파로 치면 더하면 더 했을 수도 있을 텐데. 친구야, 우리들 삶이 다 그렇게 고달팠고 아마 네가 원망하는 네 와이프도 너만큼 힘들었을지 몰라.’
철부지가 어른 노릇하며 사느라고 많이 억울했나보다. 저렇게도 말하는 걸 좋아하는 친구가 말없이 사는 게 고통이었을 수도 있지 싶다. 가족과 지지고 볶고 원망하면서도, 저 잘난 덕에 똘똘한 아파트 한 채를 또 분양받았다는 자랑을 하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중년의 철부지 친구. 역할로서의 그는 회사의 중역이면서 집안의 가장이지만 내적으로는 아직 성장이 필요한 아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걸 억울해하지만 한편으론 누구보다 솔직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다만 이젠 그가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조금씩 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원망할수록 가족들은 그로부터 멀어질 테고 그럴수록 그는 자신이 돈 버는 기계였다는 확신이 더욱 강해질 뿐이다. 가족들이야말로 그가 열심히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이고 더 많은 성취를 하게 한 동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것을 해낸 주체는 자신이다. 그 점을 그가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할 텐데 그는 그런 말을 해준다 해도 무슨 뜻인지 모를 것만 같았다. 그의 말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도 내가 이렇게 성실한 사람인지 몰랐어”였다. 학업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그가 가족을 부양하며 잠재해있던 책임감을 발휘했다는 뜻일 게다. 그렇다면 그 자신을 위해 감사한 일이고 축하할 일이다.
매일 누군가의 슬프고 속상하고 화나는 가족사를 들을 수밖에 없는 내 처지에서는, 아직 가족이 함께 살면서 별다른 질병 없이 경제적으로도 크게 궁핍하지 않다면 그건 정말 운이 좋은 경우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때로는 그렇지 못해서 이번 생이 망했다고 여겨지더라도 그 계기를 통해 자신이 무언가를 깨닫고 성장할 수 있다면 그 역시 나쁘지 않은 게 아닐까.
어쨌든 갈까 말까 망설이다 간 동창회는 의외로 얻은 게 많은 시간이었다. 그간 세파를 겪으며 찌들고 고단했을 옛 친구들의 삶이 얼굴에 나타나 보였다. 거친 삶을 살아내느라 어쩔 수 없이 생긴 주름과 늘어진 살들은 열심히 살았다는 인증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 꺼풀 벗기면 나 자신을 포함해서 다들 어쩔 수 없는 속물이고 기죽기 싫어하는 소시민들이다. 또 한편으로는 각자의 사연을 품은 채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 몸을 한사코 움직이며 갱년기를 지나고 있는,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아야 하는 중년들이다. 이상은 높았지만 부족함이 많아서 불안했던 20대에 서로를 보며 위안 삼았던 것처럼, 각자 겪고 있는 중년의 시간을 아직도 혼란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라는 위로를 주는 동기들의 존재가 고맙기도 하다.
연말에는 동창회도 나쁘지 않다. 내게 연말 사용설명서가 있다면 아마도 이렇게 적을 것이다. ‘불안했던 청년기를 동창회 덕에 엄마의 눈으로 회상하게 되면서 타성에 젖은 정신에 신선함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그 다음 줄에는 이렇게 적고 싶다. ‘그러나 다시 자기자리로 돌아와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라.’ 올 한해 비겁하게 살진 않았는지. 작년 보다는 좀 더 나은 사람이었는지, 늙어가기는 하는데 어른은 되고 있는 건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을 향해 말해야지,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아마도 연말 사용설명서는 내년 말쯤에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쓰게 될 것 같다. 결국 삶은 타인이 만든 매뉴얼대로 사는 게 아니라 매 순간의 내 경험으로 채우는 것이다. 아무리 현재의 내가 후지더라도 경험치 이상의 내가 될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연말에는 정신건강을 위해 너무 애타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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