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 쇼핑, 알코올... 중독에 빠져드는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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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의 일생을 통틀어 최고의 위기는 출산과 육아의 기간이 아닐까 싶다. 필자 또한 첫 출산 후 병원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불현듯 두려움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를 만난 기쁨도 잠시,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그 아이의 삶에 좋든 싫든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하니 겁이 났다. 그동안 읽었던 출산과 육아 관련 책들은 불안감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나 자신이 엄마로서 이미 준비된 존재라는 믿음은 불안감 때문에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많은 엄마들이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한다. 특히 낯선 곳으로 삶의 터전을 바꾼 경우, 대인관계를 맺는 시간이 남들보다 오래 걸리는 경우, 또는 남편이 워낙 스트레스가 커서 배우자의 상태를 이해할 여력이 없거나 사이가 원만하지 않은 경우,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관계가 빈약한 경우가 문제다. 이런 조건에서는 엄마들이 겪는 출산 후 우울과 불안은 돌파구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적지 않은 수의 엄마들이 아이를 사랑스럽게 느끼면서도 주변의 모든 관심이 아기에게 쏠리면 박탈감이나 소외감을 느낀다. 뱃속에서 열 달을 함께하던 아기가 빠져나간 후 상실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나라는 존재를 정면으로 바라볼 때 느끼게 되는 못마땅한 감정들을 마주하기 어려운 것도 괴로움을 느끼는 원인 가운데 하나다. 이렇듯 산후 우울증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의욕이 떨어지고 대인관계에서 소외감을 느끼다보니 아이를 데리고 돌아다니는 것도 힘에 겹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힘겨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홈쇼핑, 술, 또는 매체(tv, sns 등)나 폭식에 빠져들게 된다. 아기 엄마들이 자신도 모르게 중독에 빠져 힘겨워 하는 사례는 의외로 많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하거나 늘 자신의 문제를 혼자 해결해 와서 남들에게 부탁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더욱 중독의 덫에 걸려들기 쉽다. 남에게 좀처럼 어려움을 드러내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혼자 감당해보려다가 문제를 더 키우곤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출산 후에는 그 누구라도 삶의 무게를 혼자 다 짊어지기 벅차다는 것이다.
출산 후 소외와 고립감을 느끼는 엄마라면 주변에 자신의 어려움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다. “한 아이를 잘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도 해당된다. 아기를 돌보는 물리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엄마의 고립감을 줄이고 지지와 격려에 힘입어 좀 더 안정된 상태에서 아기를 키울 수 있다면 중독으로 빠져드는 위험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첫 아이를 키우는 시기에는 육아 경험이 있거나 멘토 역할을 해줄 사람을 가까이 두고 교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까다로운 기질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경우라면 엄마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잘 대처할 수 있도록 배움의 기회를 갖는 것이 좋다. 아이 양육과 별개로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고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도 권할만한 일이다.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엄마가 되어본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안다. 문제는 그것을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이다. 엄마가 되는 일은 위기이면서 성숙의 기회이기도 하다. 공허감을 홈쇼핑, 술, 폭식 등으로 채우려 했던 바로 그 자리에 자기를 이해하는 마음이 들어갈 수만 있다면 ‘게임 오버’가 아닐까.
*이 칼럼은 2014년 3월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예술치료사 강서영의‘아하, 그랬구나!’나와 가족의 모습>이라는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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