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나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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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수 년 알고 지내던 이들로부터 몇 년 간 연락이 오지 않는 걸 보니 그들이 나를 버린 것 같다. 천성이 느긋하고 무심한 데다가 일과 공부를 핑계로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지 못한 나의 탓이 크다. 오랜 시간 이런 나에 대해 이해심을 갖고 대하던 사람들인데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마음에 반성을 잠시 해본다.
더 많은 관심과 참여와 헌신을 요구하는 그들의 마음을 알면서도 나는 외로움을 선택할 만큼 그들과의 시간이 견디기 힘들었다. 만나는 횟수가 적을 때는 그나마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하며 근근이 관계를 이어갈 수는 있다. 또 어떤 경우는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서로 기대가 다르고 인내심의 한계치가 다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참을 수 없는 쪽이 관계를 포기하게 된다. 나를 포함한 갱년기의 소리 없는 자기중심적 아우성이 서로 충돌한 결과일 수도 있다.
관계에서 상대를 포기하는 이면에는 어떤 마음이 있을까? 아마도 더 이상의 상처를 받고 거절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미 조짐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수면 위로 올리지 못해왔다. 내 입장에서는 모임의 분위기 상 나의 문제 제기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그들 개개인을 좋아했지만 모임이 돌아가는 분위기는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상처를 대하는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소외감을 겪지 않기 위해 어떤 식으로 대처하건 그에 따르는 잃는 점과 얻는 점이 다를 뿐이다. 상대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를 죽일 수도 있고, 나의 마음이 우선이라면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을 감수할 수도 있다. 그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관계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 솔직하게 털어놓고 조율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나는 이 관계를 다시 잇고 싶은가? 잘 모르겠다. 누구라도 이런 복잡한 속내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기에 속을 털어놓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관계 회복을 할 수는 있지만 또다시 그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려면 나는 미어캣처럼 그들의 행동과 요구에 내 주파수를 맞춰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인생이 짧고 이미 내가 갱년기를 지나는 중이다. 사춘기를 이긴다는 그 무서운 시기인 것이다. 그래서 이젠 내가 그들을 마음에서 버리려고 한다. 그 대신 외롭지만 솔직할 수 있고, 나 자신과 친하게 지낼 시간, 갱년기에 조용히 건배를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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