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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어가는 꽃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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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서영심리상담센터
댓글 0건 조회 28회 작성일 25-02-0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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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볼 때 우리는 아이의 미래를 가득 찬 기대감과 잠재력을 덧붙여서 바라본다. 의식하지 못할 뿐 그런 역동이 우리에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새싹을 볼 때, 뒤뚱대며 걷는 모든 어린 생명을 바라볼 때,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그들이 그런 가능성을 잘 펼쳐서 살아가길 응원하게 된다.


특히 우리 자신이 더 이상 새로울 것 없고 기대할 수 없을 때 우리도 모르게 젊은 존재들에게 대신 그것을 바라게 된다. 젊은이들에게 저절로 희망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고 기대하게 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고정되고 낡고 굳어버린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이들은 모든 가능성을 품은 듯이 보이기에 신선해 보이고 낡은 세상을 바꿔줄 다음 주자로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노년기에 들어선 사람들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무엇을 붙잡고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걸까. 희망이 사라지고 가능성이나 신선함은 물론, 이제 경제력마저도 물건너 간 듯이 느껴지는 노년기에는 무엇이 노인을 살게 하는 것일까. 이제는 더 이상 꿈을 꿀 수도 없고 모든 게 더 나빠질 것만 같은 노년기엔 무엇이 삶을 살만하게 만드는 걸까.


한국 노인의 자살율이 OECD 국가 중에서 1위라는 기사는 처음 접한 이후로 시간이 꽤 지났지만 여전히 마음을 무겁게 하는 사실이다. 왜 우리 노인들은 서둘러 이생을 마감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이전에 이건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이의 문제라고 느낀다. 우리 모두 노인이 되기 때문이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그들은 자신이 정해놓은 나름의 막연한 기준이 있어서 현재의 삶이 그 기준에 도달하지 않을 것 같거나 유지가 되지 않으면 바로 불안을 느낀다.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언제 거기서 잘릴지 모르고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르며 자신의 능력이 아무리 남들이 보기에 괜찮아도 자기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형편없는 존재로 자신을 평가한다. 나는 그들이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우리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특성들을 입 밖으로 꺼냈을 뿐이다.


‘희망없음’은 우리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넣는다. 오늘이 내일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지금을 견딘다고 해서 다음날이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없다는 것이다. 그 예상은 어쩌면 맞을 수도 있다. 한동안 우리는 쫄고, 비참하고, 슬프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기간을 보내면 또 다른 국면이 찾아온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반복은 그냥 왔다가 사라지는 기계적인 오르내림이 아니다.


살아가는 일이 불안하고 걱정스러울 때에는 어떻게 해야할까. 스스로가 초라하게 여겨지는 시기에는 그런 상태와 자신을 동일시 하지 말기를 바란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시절 역시도 그 성과와 자신을 동일시하면 안된다. 젊을 때 얼마나 잘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화려한 삶을 살았고 대접받았는지에만 생각이 머무는가. 그 모습이 자기 자신이라 여겨진다면 그 생각에 제동을 걸어보라. 본인이 잘나가는 것은 일에서의 자신이거나 보이는 모습일 뿐이다. 진짜 자기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


진짜 자기 모습에 대한 고민을 가슴에 품어야 초라하게 여겨지는 자신의 삶도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보이는 삶에 연연하는 태도와 구별되는 삶의 태도이다.


나의 경험으로는 나이가 들어서 가장 좋은 것은 더 이상 ‘쫄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치보기 급급했던 젊은 시절을 돌아보면 어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태생이 쫄보였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내가 쫄았던 이유는 뭘 좀 잘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는 숙명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잘하려고 쫄아봤자 내 한계 이상으로 잘하지는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내가 쫄지 않아도 할 건 하는 사람이라는 걸 경험상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중요해지는 건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나답게 하는 것이 되었다.


나답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만족을 주기 때문이며 그럴 수 있게 된 것은 그동안의 수많은 희로애락의 경험들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를 좌절시켰던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웬만한 것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 배짱이 생겼다. 게다가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각이 든 것과도 관련이 있다.


시들어 가는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제 지상에서의 남은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사라져 없어질 존재이며 유한한 존재이지만 따스하고 화창한 날만이 아니라 혹독한 날씨와 비바람도 다 견뎌서 꽃으로 피어난 존재들이다. 식물을 키워본 사람은 꽃피우는 게 쉽지 않음을 알 것이다. 꽃이 시들 때의 모습은 그 세월을 다 품고 있기에 아름답다. 눈부신 아름다움이 아니라 쓸쓸하지만 깊이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 꽃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생각보다 빨리 시든다고 서운할 수는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다른 꽃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니 기꺼운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시들어 갈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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