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 내 영역, 그리고 나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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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최초의 ‘내 것’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가요?
지금의 젊은이들은 약간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 윗세대는 형제도 보통 네 명 이상이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던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양말부터 속옷까지 물려받고 물려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기억을 가진 부모들은 대부분 상반된 두 방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자녀들을 대하더군요. 형은 동생에게 당연히 자기 것을 물려주게 하거나 아니면 각자에게 무조건 새 것을 사주는 식으로 말이죠.
양극단은 어느 쪽이건 부작용의 위험이 있기 마련입니다. 내 경우는 전자였던 것 같아요. 셋째 딸인 나는 옷이건 학용품이건 늘 물려받으며 컸기에 새 옷처럼 말끔한 큰 아이의 옷을 두고 둘째에게 새 옷을 사 입히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늘 둘째에게 형의 것을 물려주었는데 어느 날부턴가는 아이가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더군요. 이 녀석에게 주관 또는 취향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요즘 애들은 왜 그렇게 까다롭고 주관이 빨리 생기는지...
동성 형제자매를 키우는 부모들 가운데 동생에게 새 물건을 사주는 것이 사치라 생각된다면 혹시 자신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한 번 돌아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이 자기주장을 잘 하는 편인지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거나 타인의 부당한 요구에 싫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지를 말입니다.
자기주장도 거절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 ‘내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다분히 일면적인 분석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런 경험-나만의 것을 소유하고 그것을 관리하고 구분하고 다뤄본 경험-은 ‘나’라는 주체감이 생기는 것에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에게 무조건 새 것을 사줘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만의 것을 소유하는 경험을 통해서 아이는 내 것이 너무 훌륭해서가 아니라 내 것이기 때문에 애착을 가지게 되고 소중히 여기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은 또 자기 자신이 특별한 능력을 가져서가 아니라 그저 자기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장점과 고유한 특성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됩니다.
반면 외동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까봐 두려워서 모든 것을 나누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기 것을 강제로 나누는 것 때문에 갖게 될 피해의식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제성 보다는 오히려 자기 것을 나누고 싶지 않은 마음을 충분히 공감해줄 때 아이는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는 안정감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세계의 중심이 늘 자기 자신이라고 믿던 아이에게 갑자기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해야 한다는 것은 충격일수밖에 없습니다.
내 것도 네 것, 네 것도 내 것이 아니라, 내 것은 내 것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후에야 남에게 빌려주는 것도 나눠주는 것도 납득하게 되고 ‘내 영역’이 손상되지 않도록 지킬 수 있게 됩니다.
* 이 칼럼은 2013년 12월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예술치료사 강서영의 ‘아하, 그랬구나!’ 나와 가족의 모습>이라는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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