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강한 당신, 혹시 외로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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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비행문제로 상담실을 찾은 중년의 H씨는 바위 같은 이미지가 연상되는 여성이었다.
단아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빈틈이나 흐트러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과 가족의 외모부터 건강 챙기기, 알뜰한 가계운영 등 살림과 가정생활 전반을 완벽하게 관리해냈다. 일생이 책임과 의무로 채워진 완벽을 추구하는 나날이었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는 언젠가 ‘균형을 잡기 위한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녀의 ‘바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아들문제 때문이었다. 자신과 가족들을 그토록 통제하고 관리해왔건만 아들이 문제행동을 일으키면서 학부모로서 그녀는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치욕스러운 순간을 경험해야 했다.
H씨만큼 가정에 충실한 사람을 필자는 별로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헌신적인 삶이었다. 아이들과 남편은 물론, 시댁에게도 충실하기 위해 외부관계도 거의 없이 가정 일에만 몰입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으며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것은 그 어디에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가족밖에 모르는 그녀였지만 정작 그 자신은 가족 누구로부터도 진심어린 관심과 애정을 받는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가족들은 그녀의 ‘헌신’ 또는 지나친 간섭에 숨이 막혀 죽을 지경임에도 그런 표현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차갑게 대하는 남편과 문제를 일으키는 아들에 대한 실망, 분노, 불안이 뒤섞인 감정으로 나날이 더 우울해졌고 인생이 외롭다는 생각이 든 지는 한참이 되었다. 하지만 주변사람들에게 이런 심정을 말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고 친구라고 부를 사람도 떠오르지 않았다.
주변인들은 왜 그녀를 사랑하기 힘이 드는 걸까? 그녀는 주변인들을 엄청나게 ‘배려’하면서 사는데 말이다. 그녀가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행하는 것을 왜 주변인들은 느끼지 못하는가 말이다.
사람들은 H씨의 연약함을 결코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뭐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멋대로 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인간적인 한계를 갖는 한 사람으로 경험되지 않고 힘 있고 주도적이고 빈틈없는 사람으로 느껴지기에 경계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녀 또한 누구로부터도 마음에서 우러난 따뜻함을 받을 수도 줄 수도 없었다. 사실 H씨는 집안에서 독재자였다.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전쟁을 감수해야했다. 그 사실을 그녀만 몰랐다. 그녀가 원했던 것이 복종인지 사랑인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 자신이 자식을 돌볼 수 없었던 부모와 살면서 거부적인 부모상을 만들어왔던 것으로 인해, 살아오면서 그녀에게 세상은 빈틈을 보이면 공격당하는 험난한 전장처럼 경험되었을 것이다. 결혼 전엔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해줄 것이라고 여겼던 남편마저 그녀의 통제하는 태도에 질려서 점차 말수가 없어졌고 그녀는 더욱 거절당한 듯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비난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보다 컸던 그녀의 내면은 사실은 누구보다 취약한 상태였다. 평생을 책임과 의무로 살아오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여기저기 아픈 원인을 알아채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자기 비난을 누구보다 많이 하며 살아왔고 타인의 사소한 지적에도 자존심이 쉽게 상하는 사람이었다. 자존심이 상해도 살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행한 일의 성패여부가 곧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내 아이가 성적이 나쁘거나 실패를 하더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기 신뢰가 있어야 한다. 내 가족의 사회적 성공이 나 자신과 별개이고, 더 나아가 나의 사회적 지위가 곧 ‘나’라는 등식을 버려야 한다는 거다.
자존심이 잘 상하는 사람은 열등감이 많다는 뜻이고, 그것은 동시에 우월감을 충족하기 위해 애써왔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의 열등감은 자기발전의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삶의 에너지를 온통 자기방어에만 쏟게 하는 소비적인 감정이다. 흔히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좀처럼 도움을 청하지 않고 버티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어느순간 외로움과 함께 인생을 헛산 것 같은 느낌이 불현듯이 찾아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불완전함과 결함을 보는 것이 유쾌할리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 아닐까?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과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자기다움의 출발이고 그런 자신을 인정해야 타인을 나와 다른 ‘개별자’로 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야 타인을 내 결핍을 충족시킬 대상으로서 보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상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자신의 외로움에 대한 제대로 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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